
이 정석 교수의 신학 문답 Q&A
하나님은 침묵하는 신이 아니라 말씀하는 분이시다. 어떤 때는 수백년 동안 침묵하기도 하셨으나, 그를 섬기는 신앙공동체가 난제에 직면하여 그의 뜻을 알기 원할 때, 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때 특별한 계시가 주어졌으며, 주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다. 이런 간헐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서 인간속에 연속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의 모든 말씀과 존재 자체가 신의 직접적 계시였다. 그는 구속을 완성함으로서 계시도 완성하셨다.
그러나, 그의 구속으로 형성된 교회가 세계 모든 민족에게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하였다. 사도가 교회를 지도하던 시대에는 질문이 야기될 때 즉시 사도들에게 묻고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지만, 사도들이 모두 죽고 성경이 종료된 후에는 새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하여 무오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간혹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으나, 교회의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지난 1900여년 동안 교회는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였으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 계시도 사도들의 권위있는 권면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듣기 원하였고, 교회는 주로 설교자와 신학자에게서 대답을 들었다.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이 대답하신 기록인 성경의 유산으로부터 그것을 살아있는 오늘의 말씀으로 만드시는 성령의 도움에 힘입어 오늘의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영속적인 혹은 반복되는 질문, 즉 성경시대에도 질문되고 답변되었던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분명하고 영원한 답변을 발견하였으나, 전혀 새로운 질문들에 대해서는 설교자와 신학자들이 창조적으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대답과 같이 무오하거나 정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오류와 편견을 포함하는 대답이었으나, 끊임없이 성령의 조명을 기도하며 답변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교회를 인도하셨다.
나는 앞으로 1년 동안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질문들 12개를 선정하여 매달 거기에 대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질문들은 이론적이거나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로서,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신학적 대답을 제시할 것이다. 신학적 대답이란 설교적 대답과는 접근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설교는 교인들의 실제적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하되, 감동과 변화에 그 주된 목적이 있어서 생활언어로 생동감있는 수사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신학은 보다 논리적이고 토론적인 방식으로 질문에 답변하려고 노력하여, 학문적 언어로 논증과 비판적 방법을 사용한다. 둘 다 하나님의 대답을 찾아 제시하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적이지만 방식과 언어에 차이가 있으며, 설교가 보다 성령의 직접적인 감동과 설득을 추구한다면 신학은 성경이 종료된 이후 지금까지 신학적 대답을 추구했던 수많은 신학자들과의 대화와 비판적 토론을 통해 오늘의 대답을 제시하려는 보다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다.
또한 나의 신학적 대답은 조직신학적 방식으로 접근되고 제시될 것이다. 성경신학이 과거 성경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대답들이 기록된 성경의 올바르고 풍요한 이해를 위한 연구이고, 역사신학이 성경시대 이후 과거의 교회사와 신학사에 대한 연구라면, 조직신학은 현대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체계적으로 답변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현대적 질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성경의 자료를 종합하여 성경적 사상체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조직신학도 있으나, 그것은 본래 어거스틴이나 칼빈과 같은 신학자들이 당시에 제기된 질문들에 답하려고 노력했던 방법과 다른 안일하고도 무관심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절박한 질문이 없으면 진정한 답변도 있을 수 없다. 조직신학은 먼저 현대적 질문을 분석하고 이해한 다음에 성경에서 그와 가장 유사한 상황이나 대답을 찾아 그것을 기초로 풍요한 신학사적 지혜를 참고하여 오늘의 대답을 제시한다.
신학은 변증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때 신학자들은 기독교 사상을 변호하며 세속적 공격을 반박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응논리를 제공한다. 또한 교회 내에 교회의 하나됨이나 그리스도의 주권 또는 성경적 진리를 위태롭게 하는 운동이나 이론이 발생하면 신학자들이 그것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일부 신학자들은 분파주의에 소속되어 어용신학을 외치는 오류를 범하였으며, 그 결과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분리시키는 잘못을 범하여 신학무용론을 야기하는 사태를 초래하였으나, 신학없는 교회는 무질서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 물론, 신앙은 필수적인 것(esse)이지만 신학은 있으면 더 좋은 것(bene esse)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신학적 이념은 ‘하나의 교회, 하나의 신학(una ecclesia, una theologia)'으로서, 신학이 교회의 일치와 분파 이데올로기의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한국 신학계가 철저히 양분되어 각기 분리된 학회를 가지고 끼리끼리 모이며 서로 만나지도 대화도 하지 않는데 대하여 매우 슬프게 생각한다. 신학자들이 함께 모일 때 교회도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다루게 될 12개의 질문은 현대 세계가 교회를 공격하는 질문들, 그리고 교회의 일치와 발전을 저해하는 질문들로서, 그것은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확립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 질문들은 조직신학의 순서에 따라 전개될 것인데,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월에는 이성을 해체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해 답할 것이다. 과연 이성이 해체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절대 진리와 절대 윤리가 붕괴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기독교의 이성관, 그리고 이성과 신앙, 이성과 감정의 관계와 같은 주제들과 연관하여 답변될 것이다. 2월에는 20세기 교회의 분열을 야기시킨 성경관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과연 성경에 오류가 있는가? 4복음서를 비롯하여 성경이 포함하는 복수적 기록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성경의 존재와 교회의 일치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성경관의 미세한 차이로 대립되고 상처받은 교회가 치유되기 원한다. 3월에는 하나님도 진리도 기독교도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과정신학의 대두로 말미암아 제기된 질문을 다루며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논할 것이다. 과연 신도 변화하는가? 신의 결정은 변화될 수 있는가? 신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 신의 결정과 인간의 결정은 어떤 상호관계를 가지는가? 기독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는가? 4월에는 한국 신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삼위일체론을 다룰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분인가? 성부와 성자는 같은 분인가, 다른 분인가? 5월에는 현대 유전공학과 관련하여 인간의 본성과 죄성이 유전인자와 어떤 관계를 가지며, 원죄의 전가 과정에 있어서 부모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성격이나 죄성도 교정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것이다. 과연 유전공학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6월에는 보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질문인 속죄론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과연 우주적 대속이 가능한가? 어떻게 타인이 대신 속죄할 수 있으며, 더욱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전 세계와 전 시대를 포함하는 우주적 대속이 가능한가? 인간도 타인을 대속할 수 있으며 중보가 가능한가? 7월에는 기독론의 문제로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존재를 다룰 것이다.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천상에 있는가, 아니면 우리 가운데 있는가? 종교개혁 시대부터 문제가 되었던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성령과 성자의 사역적 관계는 어떠한가? 8월에는 종교다원주의를 다룰 것이다. 과연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가? 타종교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기독교의 종교성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9월에는 구원론의 실제적 주제인 성화론을 다룰 것이다. 과연 성화가 가능한가? 왜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은 성화의 노력을 중도에 포기하는가? 신자와 불신자가 별 차이가 없다는 세상의 비판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 10월에는 종교개혁의 달로서, 교회개혁의 주제를 논할 것이다. 과연 교회는 교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우주적 교회와 교파는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교회보다 교파가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교파나 교단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11월에는 교회의 세속화 문제를 다룰 것이다. 한국교회가 정체를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유럽교회의 세속화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세속화에 대한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세속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12월에는 종말론적 주제를 다룰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미 종말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면, 인류는 자멸을 향해 나가고 있는가? 미래학과 종말론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인류는 지금 진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멸망하는 과정에 있는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본인은 신학에 입문한지 30년이 지났으며 한국과 미국과 네델란드에서 신학을 배우고 신학교수로 지내오면서 여러 가지로 느낀 바 크다. 부정적 신학보다는 긍정적 신학을, 교회를 분리시키는 신학보다는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 신학을, 독선의 신학보다는 화해의 신학을 추구하게 되었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목회 경험도 상아탑 속의 이론적 신학보다는 교회에 도움이 되는 실천적 신학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이제 한국을 떠나 미국의 풀러신학교로 부임하면서 미국과 외국에 있는 한인교회를 위해 도움이 되기를 원하였는데, 이렇게 미주 크리스챤 신문이 1년 동안 연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한 마음으로 응답하였다. 부디 여러 독자께서 본인이 성령님의 도움으로 유익하고 올바른 대답을 제공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애독해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미주 크리스챤신문 2002년 1월 4일자)

